최근 한국에서 교육정보시스템(NEIS, 나이스)문제로 시끌벅적하다. 어떤 정책의 시행을 놓고 논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번 논쟁을 보면 뭔가 번지수가 잘못된 논쟁임이 확실하다.
일본의 비슷한 논쟁/주기네트
일본에서도 최근 한국의 나이스와 거의 닮은꼴의 논쟁이 있었다. 이른바 `일본판 주민등록증'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민기본대장네트워크시스템(주기네트)의 실시를 둘러싼 논쟁이다. 주기네트는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 한사람 한사람마다 11개로 된 번호를 정부가 일률적으로 부여해 이제까지 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있던 주민정보를 컴퓨터망을 통해 정부가 일원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주기네트에 등재되는 개인정보는 이름, 주소, 생년월일 등 6개 종류에 불과하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지식인들의 반대가 강하다. 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8월5일부터 주기네트의 본격적인 실시를 강행할 방침이지만, 아직도 몇 개의 자치단체가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장치가 미흡하다면서 참가를 거부하는 등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5월28일에는 나가노현의 본인확인정보심의회가 개인정보 보호가 미흡하다면서 다나카 야스오 지사에게 현 차원의 주기네트 이탈을 건의해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의 불참가는 있었지만, 현 차원의 이탈 움직임은 처음이다.
주기네트에 반대하는 쪽의 가장 큰 논점은 정부에 의한 개인정보의 장악 관리가 기본적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 즉 인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금은 개인 정보의 내용이 6개항에 불과하지만, 정부가 편리와 효율 논리에 따라 정보량을 늘려나갈 경우 정부가 개인정보를 완전히 통제 장악할 수 있는 정보독재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정보의 유출을 막을 제도적 장치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런 반발도 고려해 5월23일 행정기관 및 민간사업자가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요건을 규정한 개인정보 관련 5개 법안을 제정했다. 이 법들은 고도의 정보화 사회에서 대량 유통되는 개인정보의 유출 및 부정 이용을 제도적으로 막자는 목적의 기본법이다. 고객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개인 업자들이 본인의 동의 없이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사업자가 이를 위반할 경우 주무 부처 장관이 이용 중지 명령을 내리고, 공무원이 정보를 유출할 경우 징역과 벌금에 취하는 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법안의 심의 과정에서 정부의 정보 이용 중지 명령과 관련해 언론 침해 논란이 제기돼 보도기관과 저술업, 학술 연구기관, 종교단체 등은 의무 규정 적용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의 정치가 등의 비리를 주로 폭로하고 있는 프리랜서나 작가 등은 의무규정이 적용되므로 언론통제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보다 손가락의 주인이 중요한 논쟁
일본에서는 제도의 실시와 법의 통과에도 불구하고 주기네트,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보혁구도의 논쟁은 아니다. 그 초점은 정확하게 이 제도와 법이 개인의 프라이버시, 인권을 지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모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네트를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진보권 뿐 아니라, 평소 보수적인 글을 많이 써 온 작가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오히려 주기네트 반대운동에 가장 정력적으로 나서고 있는 작가 사쿠라이 요시코는 이념적으로는 보수성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문제를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 인권 보호 차원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진보 인사들과 힘을 함쳐 반대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나이스 논쟁은 인권과 개인의 사생활 문제를 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보혁싸움의 인상이 강하다. 그 사람이 어떤 내용을 얘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얘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색깔의 사람인가가 중요한 논쟁인 것이다. 즉, 손가락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손가락의 주인이 누군가인가를 문제삼는 논쟁인 것이다.
또 하나는 좁게는 교육계, 더 나아가서는 이 사회 전체를 놓고 벌이는 보혁간의 주도권 싸움으로 문제가 변질돼 있다. 나이스 자체의 인권 침해 여지는 없는지, 효율성이나 편의성, 그동안 들어간 비용과 인권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중시해야 하는지, 효율과 인권을 다같이 보장하는 방법은 없는지를 논의하기보다는 이상한 색깔을 가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문제를 삼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식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를 냉정하게 전하고 분석해야 할 언론은 오히려 이런 논란을 부추키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전교조가 연가투쟁을 한다든가, 교장단과 교육감단이 반발한다든가, 교육부가 전교조에 굴복했다든가, 전교조에 굴복했으니 교육부총리는 책임을 지고 물러가라든가 하는 것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논쟁의 초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다른지를 전하면서 여론을 수렴해나가는 기능이 언론이 맡은 기능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정치권도 이를 세 대결의 싸움이 아니라 인권신장과 갈등해소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정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보화 시대의 피할 수 없는 문제
일본의 주기네트 문제나 한국의 나이스 문제는 사회발전의 큰 맥락에서 볼 때 정보고도화 시대에서 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고 논란거리이다. 또한, 정보의 활발한 유통과 효율적인 이용과 인권이 충돌할 때 그것을 어떻게 조정하면서 나갈 수 있느냐는 한국 일본 뿐 아니라, 정보화 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번 나이스 논쟁은 시대가 가져온 본질적인 논쟁으로 자리매김돼야 하고, 그만큼 철저하고 근본적인 논쟁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히, 교육부가 실시하려고 하는 나이스는 일본의 주기네트보다 정보 유출 및 국가에 의한 정보 장악의 위험이 훨씬 크다. 간단하게 비교해도 일본은 주기네트에 6개의 정보만을 올리고 있지만, 교육부가 실시하려는 나이스의 경우에는 생활기록부, 건강기록부, 보건일지에 적힌 학생 및 학부모 관련 정보만도 200여 가지가 된다고 한다. 또 정보 유출을 방지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률도 완비돼 있지 않다.
서로의 주장을 관철하고, 저지하고,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하고 항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점을 파고들고 그를 막는 데 힘을 쏟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일본에서 벌어진 논쟁도 참고하면서 이번 나이스 논쟁을 정보화의 이점도 살리면서 기본적인 인권도 지키는 `나이스(nice)'한 논쟁으로 이끌어 갔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