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일기장, 교사는 훔쳐봐도 되는가?
[중국]학생도 알리고 싶지 않은 사생활이 있다
조영래 기자 choyl815@hanmail.net
학생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가? 이런 물음에 최근
중국 사법부는 학생도 일반 사람처럼 사생활의 "비밀 보장권"을 마땅히 보장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최근 중국 사천성(四川省) 중경시(重慶市)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의 일기를
공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여론을 타고 큰 논란이 되었고, 급기야
소송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현재 중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학생의
사생활 "비밀보장"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한 중학교의 여학생이 같은 반 남학생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교사에게 일렀고, 담임교사는 사실확인을 위해 이 남학생의 일기장을
강제로 보았다. 일기장 내용에는 정말로 그런 내용이 있었다. 교사는 같은 반
학생에게 문제의 일기장을 공개했고, 처벌로 이 학생을 수업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사실 안 학부모는 학교를 방문해 담당 교사에게 학생의 수업참여를 간청했다.
하지만 담임 교사는 완고히 학부모의 간청을 냉담하게 거절했다. 담임교사의 이런
처벌은 학교의 권고로 겨우 무마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태는 그리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학부모는 이런 교사의 태도에 불만과 분노를 느끼고, 다음 날 법원에 정식으로
담당 교사를 제소했다. 그 결과, 법원은 학부모의 편을 들었다. 그 이유는 교사의
처벌은 교육적인 학생의 지도가 아니라 오히려 학생의 사생활권과 명예권을
침범하는 행위로 판단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그
정신적인 손실을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교사는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를 했다. 그는 항소이유로 자신은 “교사의
직무를 이행했을 뿐이고, 학생의 일기장 확인은 학생의 생활태도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교육적인 행위였다.”고 했다. 결코 이런 자신의 행동이 학칙을 위배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자신의 처벌행위가 결코 학생의 사생활권과 비밀권을 침범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오히려 문제의 그 남학생이 교내에서 이성교제를 했기
때문에 ‘학생수칙’을 위배한 것이라 주장했다.
교사의 주장을 부연 설명하면, 교사의 일기장 확인은 학생의 상황을 자세히
이해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는 것이다. 이 교사는 학교가 학생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방법으로 노트검사, 일기확인, 수업참여금지 등의 처벌행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처벌은 선의적인 교육범위로 오히려 법원판단이 교사의
명예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교사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법원은 다음과 같이 최종
결을 내렸다.
학생 “사생활 비밀 보장권”의 명문화
그러나 법원의 판결 결과는 1심과 변함이 없었다. 이 교사가 말하는 이성교제는
비록 학칙에 위배되지만 공공이익에 위배되지 않으며, 이 시기 미성년자가 갖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당연한 심리상태의 반영이란 것이다. 또한 교사로서 학생을
이해하며 바르게 지도하지 못하고, 일기를 타인에게 공개하고, 일기장을 찢는 등의
행위는 학생의 인격을 모욕하고 무시한 행동이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비록 교사의 행동이 학생을 지도하려는 교육적인 관점에서 출발하긴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적당하지 않아서 도리어 학생에게 정신적인 충격과 가출을 초래하는
결과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행동은 결국 학생의 심신과 학업에 큰
악영향을 초래했다. 그래서 교사는 학생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일정한 정신적인
보상을 해야한다고 최종 판결했다.
법원판결 이후에 학생의 사생활 보호여부를 두고 교사, 학생, 학부모, 교육전문가
사이에는 다양한 이견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학생의 심리상태와
특징을 고려하고, 구체적으로 문제를 분석해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의 인격존중과 사생활보호라는 합법적인 권리를
고려해서 “이해와 믿음”이라는 기본 원칙에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전문가의 주장이다.
이번의 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소홀히 생각했던 학생들의 “사생활과 비밀보호에
대한 권리”를 구체적으로 제도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항주(杭州)의 한 초등학교는 처음으로 학생의 “비밀 보장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 학교는 “학생권리보장공약(學生權利保障公約)”이란 규정을
만들었는데, 이 공약서에는 모두 18개 조항이 있다. 그 중 제1항에서는 학생의
“비밀 보장권”을 “교사는 학생의 동의 없이 학생의 사적인 일기와 편지를 볼 수
없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성적순으로 배열해 공개할 수가
없다.”라고 명시했다.
이 공약의 중요한 내용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학생은 교과과정에 근거하여 수업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교사는 마음대로 수업을
빼먹거나 조정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마음대로 학생을 쫓아내거나 교사가
상업적인 활동이나 연출에 학생을 동원할 수가 없다.
◆ 학생은 정해진 시간에 휴식과 오락할 권리가 있고, 교사는 학생의 휴식시간과
생활을 보장하고 지도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학생의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보충수업이나 과제를 낼 수 없다. 교사는 각종 경기나 시합에 학생들을 강제로
동원할 수 없다.
◆초등학교 1학년은 방과 후 과제가 없고, 2-3학년은 매일 방과후의 과제가 30분을
초과할 수 없으며, 4학년은 45분, 5-6학년은 1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중국의 이러한 “공약”들이 과연 어떤 효과와 결과를 초래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중국과 같이 이런 학생들의 사생활 “비밀 보장권”과
같은 명문화된 “공약”이 있는지 여부도 궁금하다. 하지만 중국과 유사한
문화전통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런 중국 교육계의 변화를 충분히 주목해 볼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다.
학생이라고 명시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현행 헌법 제17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즉 국민은 인간적
존재로서, 소극적으로는 그 사사(私事)와 사생활(私生活)의 내용 및 명예, 신용
등을 침해받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로운 활동과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침해 또는 간섭받지 않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법과
학교교칙에는 학생들의 사생활 “비밀 보장권”과 관련한 어떤 조항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2003.02.23 ⓒ 즐거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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